인용된 책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열림원, 2019) 12p
시간이 흐르면 또 원래의, 혹은 또 다른 공허가 몰려들어 그곳에 고인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있다. 하지만 끝내는 결핍감, 무료함, 체념 등 모든 것을 묵묵히 삼키고서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이 얼마나 고요하고 쓸쓸한가. 그러나 그 쓸쓸함에는 충족된 인간이나 완벽한 세계에는 없는, 작은 조개껍데기의 안쪽을 보는 듯한 복잡한 광택이 있다.
니시카와 미와, 『고독한 직업』(이지수 역, 마음산책, 2019) 211p
사랑은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찾은 유일한 피난처일 가능성이 높다. 더 곤핍하고 절박한 사람이 피난처를 찾듯, 사랑도 더 절박한 사람들이 찾는다.
장석주, 『사랑에 대하여』(책읽는수요일, 2017) 54p
내가 이룬 것이 무척이나 평범하다는 것을 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 나 혼자뿐인 것도 아니고 내가 최초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줌파 라히리, 『축복받은 집』(서창렬 역, 마음산책, 2013)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309p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권상미 역, 문학동네, 2013)
「작은 기쁨」 124p
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무궁무진한 함수로 이어져 있는 미궁이 아닌가. 우리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인이 될 수도 있고 사랑해 마땅한 사람을 사랑하는 행운아일 수도 있고 세상에는 돌고래나 대형 수목과, 심지어 좋아하는 책상과 결혼한 사람도 있다. 그런 목재로 만들어진 반려자는 왁스를 먹여주는 일 이외에 별다른 관리가 필요하지 않고 상상력만 발휘한다면 다양한 스킨십도 가능하다고 책상과 결혼한 여자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상상력만 있다면 불운한 사랑은 없는 것이었다.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문학동네, 2019)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 50p
나는 누군가 우리의 사랑을 비웃을 때마다 속으로 기도해요. 간절함을 아는 사람이 가장 절실한 기도를 할 수 있기에, 나는 나의 기도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알아요. 방송국 앞에서, 사람들이 경멸에 찬 눈으로 보거나 욕을 하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생각합니다. 당신은 평생 이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을 알지 못할거야, 라구요.
이희주, 『환상통』(문학동네, 2016) 11p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최정수 역, 문학동네, 2012) 66~67p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가진다. 약점은 연약한 부분이라 당연히 상처 입기 쉽다. 상처받는 부위가 예민해지고 거기에서 방어를 위한 촉수가 뻗어 나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이 어떻게 취급당하는가를 통해 세상을 읽는 영역이 있다.
은희경,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 2019) 1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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